달빛과 함께 하는 지식한냥

지명의 유래 2

망우리 고개, 재동, 압구정, 피맛골, 도화동 지명의 유래

망우리 고개 태조 이성계는 어느덧 나이를 먹고 죽을 때가 다가오자 자신이 묻힐 명당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동구릉의 건원릉 터를 찾았고 만족하면서 환궁을 했습니다. 환궁 도충 한 고개 위에서 쉬게 됐는데 고개 위에서 오랜 근심을 잊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고개를 망우리(잊을 망(忘), 근심할 우(憂), 마을 리(里) 고개라고 불렀습니다. 재동 재동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동입니다. 재동은 조선시대 세조 때 만들어진 지명입니다. 이 지명은 '계유정난'으로 만들어졌는데 계유정난은 수양대군과 그 심복들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고, 단종을 보필하던 황보인 등의 중신들을 살해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당시 거리는 피비린내가 진동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무등을 태우고 남은 재를 모아 뿌렸고, 온 동네에..

왕십리, 청량리, 말죽거리, 여의도, 마로니에 공원의 유래

왕십리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뒤 고려왕조 때 수도인 개성에서 다른 곳으로 수도를 옮기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계룡산으로 정했으나 공사가 진행 중일 때 반대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중신이 계룡산으로 수도를 옮기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무릇 도읍이라 함은 나라의 가운데 있어야 하는데 계룡산은 너무 남쪽에 있고, 지세가 너무 좁고 토지가 푹 꺼졌으니 풍수지리상 쇠약과 패망을 불러옵니다." 중신들의 반대에 어쩔 수 없이 공사를 중지하고 한양으로 천도하기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무학대사에게 궁궐터 자리를 찾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무학대사는 지금의 왕십리 근처에서 지형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처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노인이 농사를 지으면서 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멍청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