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과 함께 하는 지식한냥

여의도 2

서울 지명의 유래 모음(말죽거리, 피맛골, 여의도, 낙산, 마로니에 공원)

말죽거리인조 때 이괄의 난으로 인해 인조는 신하들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급하게 피난을 가던 도중이 모두 굶주림과 피곤에 지쳐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때마침 그 근처에 사는 선비들이 팥죽을 쑤어 임금에게 바치고 말에게 죽을 먹이던 곳이라 하여 '말죽거리'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피맛골(피마길)서울 종로구 종로 1가에서 종로 6가를 잇는 종로의 뒷골이자 도로입니다. ​조선시대 종로 거리는 육조 관청이 있어 지위기 높은 벼슬아치의 행차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때마다 백성들은 땅에 엎드려 예를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지나가는 벼슬아치가 너무 많다 보니 땅에 엎드리는 시간이 길어져 볼일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벼슬아치들의 행차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종로 거리 뒤편에 만..

왕십리, 청량리, 말죽거리, 여의도, 마로니에 공원의 유래

왕십리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뒤 고려왕조 때 수도인 개성에서 다른 곳으로 수도를 옮기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계룡산으로 정했으나 공사가 진행 중일 때 반대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중신이 계룡산으로 수도를 옮기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무릇 도읍이라 함은 나라의 가운데 있어야 하는데 계룡산은 너무 남쪽에 있고, 지세가 너무 좁고 토지가 푹 꺼졌으니 풍수지리상 쇠약과 패망을 불러옵니다." 중신들의 반대에 어쩔 수 없이 공사를 중지하고 한양으로 천도하기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무학대사에게 궁궐터 자리를 찾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무학대사는 지금의 왕십리 근처에서 지형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처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노인이 농사를 지으면서 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멍청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