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이씨
11 ~ 13세기 대월 리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공온을 시조로 모시고 있고, 그의 6대손인 이용상을 증시조로 모시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남아있는 리 왕조의 후손인 화산이씨를 제외한 베트남에 있는 리 왕조 후손은 일족이 몰살당해 응우옌씨로 흡수되거나 다른 성씨로 바꾸어 산다고 합니다.
이용상이 고려로 망명할 때 리 왕조의 계보를 챙겼고, 후손이 이를 [화산이씨세보]에 남김으로써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화산이씨로는 이세희, 이우일, 이우성이 있습니다.
성곡 마씨
상곡 마씨는 춘추시대 제나라 대부인 마영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시조는 회회왕국의 왕이었던 마립(麻立)입니다.
회회왕국은 중국 남부에 있던 작은 왕국으로 추정되며 몽골 고원 및 중앙아시아에서 활약한 투르크계의 민족으로 대부분 이슬람을 신봉하며 오늘날 중국에서 후이족으로 불립니다.
1512년 회회왕국이 망하자 6세 태자 마록은 월남으로 망명하여 왕에게 의탁해 왕의 사위가 됩니다.
마록의 아들 마귀는 1597년 정유재란 때 명나라 장군으로 원병을 이끌고 조선을 도우러 왔습니다.
그 후 청나라에 의해 명나라가 멸망하자 마귀제독의 증손인 마순상이 우리나라에 귀화합니다.
덕수 장씨
시조 장순룡은 회회인으로 위구르계 사람입니다.
회회인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이슬람교를 믿습니다.
고려 충렬왕 때 고려에 귀화헀습니다.
사성 김해 김씨
사성 김해 김씨의 시조는 김충선으로 그의 후손들이 가창면 우록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 '사성 김해김씨'를 '우록 김씨'라고도 합니다.
김해김씨와 같은 본과 성을 사용하나 혈연적으로 관계가 없습니다.
김충선은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항왜 출신의 장수입니다.
일본 이름은 사야카로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을 맡아 3천 명의 부하를 이끌고 조선에 상륙합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유학공부에 심취해 조선과 중국문화를 흠모해 살인과 약탈, 배신이 만연한 당시 일본의 풍속에 수치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상륙한 다음 노략질을 금하는 군령을 내리고 침략의 뜻이 없음을 알리는 '효유서'를 백성에 돌린 다음 조선에 투항했습니다.
귀순 이후 경상도 지역의 의병들과 힘을 합치며 왜군과 여러 번 싸웠고, 임진왜란 이후 병자호란이 터지가 쌍령전투에 참전하여 청나라군 500여 명을 전멸시키는 활약을 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조로부터 김해 김 씨를 하사 받았는데 가야 수로왕계인 김해 김 씨와 구분하기 위해 '사성(賜性 : 하사 받은 성) 김해 김씨'라 칭했습니다.
사성 김해 김씨의 대표인물로는 정치인 김치열, 아이돌 김기범이 있습니다.
청해 이씨
함경북도 북청군을 본관을 두는 한국의 성씨로 여진족계 성씨입니다.
시조인 이지란은 여진족으로 원래 이름은 쿠란투란티무르이며 아버지인 아라부카는 지역의 지도자였습니다.
이지란은 많은 부하를 이끌고 고려로 귀화하여 이성계 휘하에 들어가 이씨 성을 하사받아 청해 이씨를 창조합니다.
대표인물로 정치인 이주영, 독립운동가 이기을, 영화감독 이장호, 축구선수 이청용이 있습니다.
남양 제갈씨
남양 제갈씨는 촉나라 승상을 지낸 제갈량의 아버지 제갈규를 시조로 삼고 있습니다.
제갈규의 5세손인 제갈충이 한나라가 망하자 위나라에 불만을 품고 신라 미추이사금 때 신라로 망명하여 남양 제갈씨의 중시조가 되었습니다.
고려 고종 때 제갈홍과 제갈형 형제가 형인 제갈호은 제씨로 하여 낭야군에 봉해지고, 아우 제갈형은 갈씨로 하여 남양군에 봉해지면서 성씨가 나뉩니다.
조선 고종때 성씨 복원운동으로 제씨와 갈씨 일부가 제갈씨로 복성 했습니다.
광동 진씨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장수 진린이 시조입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청나라가 명 나라를 침공하여 그의 자손들도 열심히 싸우지만 결국 명나라는 청나라에 의해 멸망합니다.
진린의 가족들은 식솔들을 데리고 조선으로 망명했습니다.
경주 설씨
시조인 설손은 위구르 사람으로 원나라의 단주태수를 지내다 1358년 고려에 귀화했습니다.
설손은 홍건적이 대령을 침범하자 병란을 피해 고려로 왔습니다.
당시 고려왕은 공민왕이었는데 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설손과 만난 적이 있어 그를 크게 후대해 집을 하사하고 부원에 농토를 하사했습니다.
연안 인씨
연안 인씨의 시조 인후는 원래 몽골사람으로 본명은 훌라타이라고 합니다.
1275년 충령왕의 비 '제국대장공주'를 따라 고려에 와서 귀화합니다.
인후라는 이름은 당시 대장군이었던 교동 인씨 인공수 장군과 친하여 그의 성을 빌려 쓴것이라 합니다.
함박 김씨
김충선과 함께 조선에 귀화 한 김성인이 시조입니다.
김성인의 일본 이름은 사여모입니다.
김성인은 1603년 자원하여 북방 경비에 나가 공을 세웠으며 광해군은 음식을 베풀어 위로하고 김씨 성과 함께 이름을 성인으로 하사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생기고 난 뒤 김성인의 후손들이 대종회를 결성하고 본관이름을 함박 김씨로 하였습니다.
병영 남씨
헨드릭 하멜 일행이 사고를 당해 조선에 표류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뒤 전라남도 강진군의 전라병영에서 지내다가 때를 보고 탈출했습니다.
하지만 일행 중 8명이 조선에 남기를 바랬는데 그 일행 중 한 사람이 한국여성과 결혼하면서 후손이 생겨 현재의 병영 남씨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소주 가씨
시조는 명나라 장수 가유약입니다.
명나라 장수로 그의 아들 가상과 손자 가침과 함께 정유재란 때 활약하다 부산에서 아들 가상과 함께 전사합니다.
손자 가침은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전사하자 울산의 서생진 도독동에서 장사를 지낸 후 귀하합니다.
그 뒤 안동부사 권순의 딸과 결혼해 네 아들을 두고 가침이 죽자 네 아들은 충청도 서산으로 자리를 옮겨 소주 가씨의 터전을 이뤘습니다.
해주 석씨
시조는 석성으로 명나라 병부상서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원병을 파견했습니다.
석성이 정책 실패로 관직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들어가자 그의 아들 석담이 조선으로 망명했습니다.
나주 나씨
시조 나부는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에 봉명사신으로 왔다가 나라가 망하자 고려로 망명했습니다.
'일반상식 모음 > 사회, 문화 지식 한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보기 어플은 왜 걷기만 해도 돈을 줄까? (2) | 2025.02.12 |
---|---|
죽은 인터넷 이론과 요즘 나타나는 실태 (0) | 2025.02.11 |
갤럭시 S시리즈의 역사와 평가 간단 정리 (1) | 2025.02.10 |
조선시대 직업들 모음(매품팔이, 내외술집, 조방꾼, 기모, 거벽, 추노객, 무뢰배) (3) | 2024.12.22 |
상표가 보통명사가 된 브랜드 모음 (1) | 2024.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