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는 고려말 충신으로 학자이자 관리입니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조선건국에 반대하다 이방원에 의해 선죽교에서 살해당했습니다.
이방원이 정몽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하여가의 시를 읊었는데 정몽주는 단심가로 답해 고려에 대한 충성심을 잘 보여줬습니다.
정몽주의 태몽
정몽주의 아버지 정운관은 왕의 명령으로 중국에 갔습니다.
중국에서 가서 일을 하던 도중 어느 날 꿈속에서 부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인 또한 그날 꿈속에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이 신기한 일이 생기고 몇 달이 지나자 부인의 배가 점점 불러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바람이 난 줄 알고 화를 내며 임신한 며느리를 별체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며느리는 아기를 낳았고 남편 또한 중국에서 돌아왔습니다.
부인은 남편에게 자신의 결백을 알리고 자결하려 했습니다.
"꿈에 당신을 보고 난 뒤 갑자기 달거리를 하지 않더니 애가 들어섰습니다. 저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저의 결백을 증명하려 합니다."
남편은 부인의 이야기를 듣고 10개월 전쯤 부인을 꿈에서 만난 것이 기억났습니다.
부부는 서로 이야기를 나눈 결과 두 사람이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꿈을 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남편은 아내가 낳은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부인이 낳은 아이를 꿈에서 낳은 아이라 해서 꿈 몽(夢) 자를 넣어 정몽주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고려시대 한 사냥꾼이 사냥을 하러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유독 사냥감이 없어 허탕만 치고 아무 소득이 없었습니다.
실망한 사냥꾼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길을 잃었습니다.
매일 다니던 길을 잃어버린 사냥꾼은 당황해서 이리저리 헤매는 도중 산속에 있는 집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냥꾼은 날이 어두워지고 있기 때문에 하룻밤을 묵을 생각으로 그 집으로 갔습니다.
문을 두들기니 집에서는 한 아리따운 여인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사냥꾼의 사정을 듣게 된 여인은 술과 고기를 대접하고 따뜻한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배부르게 밥을 먹고 난 사냥꾼은 잠을 자려는데 어디서 땅이 쿵쿵 울리는 발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습니다.
밖을 쳐다보니 키가 8척(2.6M)나 되는 거인이 집으로 오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놀란 사냥꾼은 방한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거인은 자신이 가져온 멧돼지를 산채로 잡아먹었습니다.
사냥꾼은 자신도 멧돼지처럼 먹히는 건가 싶어 두려움에 떨었지만 다행히 거인은 멧돼지를 먹고 바로 잠에 들었습니다.
날이 밝자 잠에서 깬 거인은 사냥꾼에게 비싼 가죽이 들어있는 보따리를 주며 여기 있는 여인과 혼인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부탁을 받은 사냥꾼이 어안이 벙벙해져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거인은 그 대신 가죽을 팔아 소 두 마리와 소금 100석을 달라고 했습니다.
사냥꾼은 혹시 부탁을 거절하면 자신을 잡아먹을 것 같았기에 거인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사냥꾼은 마을로 내려가 가죽을 팔고 판 돈으로 소 두 마리와 소금 100석을 사서 거인에게 주었습니다.
거인은 소 두 마리와 소금 100석을 받자 소를 그 자리에서 먹어치우고 다시 가죽이 들어있는 보따리를 주며 소금 100석을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
사냥꾼은 거인이 소 두 마리를 가져다 달라는 것을 잊어먹었다고 생각해 소 두 마리와 소금 100석을 사서 돌아갔습니다.
거인은 이제 소는 필요 없다면서 소금만 가져가고 사냥꾼에게 이제 당신과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거라며 잘 지내라고 하고 떠났습니다.
이대로 거인을 보내기 아쉬운 사냥꾼은 이름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하자 거인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내년 단옷날 나루터에서 검정 조랑말을 타고 삿갓을 쓴 귀공자가 지나갈 테니 그 사람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거인이 떠난고 거인의 부탁대로 여인과 결혼하게 된 사냥꾼은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내년 단옷날이 다가오자 나루터에 가서 검정 조랑말을 타고 삿갓을 쓴 귀공자를 기다렸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거인의 말대로 검정 조랑말을 타고 삿갓을 쓴 귀공자가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사냥꾼은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며 거인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귀공자는 탄신을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만난 그 거인의 이름은 '우(禹)'라고 합니다.
천하가 불안정하면 영웅호걸이 나오지만 천하가 안정되면 우가 나옵니다.
이 우는 평소에 산속에 숨어 지내지만 천하가 어지러워질 것 같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영웅호걸이 나올 수 있게 합니다.
우는 소를 먹으면 더 오래 살 수 있지만 소금을 먹으면 몸이 쇠약해져 죽습니다.
우가 소는 필요 없고, 소금만 필요하다는 것은 우가 죽는다는 소리이고 이는 곧 천하가 어지러워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30년도 안되어 각지에 영웅호걸이 출몰할 것이고 나라가 망조에 처했다는 소리입니다.
이제 고려왕조의 운명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망할 운명에 처해있다고 하자 사냥꾼은 슬픈 표정을 지었습니다.
말을 마친 귀공자가 길을 떠나려고 하자 사냥꾼은 귀공자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귀공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혔습니다.
"저는 정몽주라고 합니다."
정몽주의 말처럼 고려는 큰 혼란에 빠지고 30년도 안되어 고려는 망하고 조선이 건국됐습니다.
이런 혼돈 속에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다행히 사냥꾼의 집안은 무사했다고 합니다.
정몽주 사후 설화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한 후 임시로 가매장되었습니다.
나중에 후손들이 정몽주의 시신을 선산에 모시기 위해 용인으로 갔습니다.
용인으로 가니 땅에 갑자기 바람에 날린 만장기 하나가 땅에 꽂히는 것이었습니다.
후손들은 그 자리가 명당이라 생각해 거기에 묘를 쓰기로 했습니다.
묘를 쓰기 위해 땅을 파다 날이 저물자 내일 날이 밝으면 하기로 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그날 한밤중에 정몽주의 손녀딸이 일어나 사람들이 파놓은 묫자리에 물을 길어 가득 물을 채웠습니다.
다음날, 사람들이 묘를 파던 곳에 가보니 묫자리는 물이 흥건하자 사람들은 그 자리가 아니라 옆 자리에 땅을 파고 무덤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 세월이 지나 손녀딸은 이 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이석형에게 시집을 간 손녀딸은 예전에 자신이 물을 부운 묫자리를 기억해 그 자리를 이 씨 집안 조상의 산소로 사용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정 씨 집안의 후손들은 별로 벼슬을 하지 못했으나 이석형의 자손은 많은 벼슬자리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설화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정몽주의 묘가 만들어진 것은 1406년으로 아직 정몽주의 손자인 설곡 정보의 딸은 태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이석형의 자손이 크게 번창하자 생긴 이야기라고 합니다.
태종 이방원은 정몽주를 암살한 뒤 조선의 영의정으로 추증(관료의 사후에 품계나 직급을 높이는 일)했습니다.
정몽주의 후손은 정몽주의 비석에 조선의 영의정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비석에 기록한 지 며칠 안되어 갑자기 번개가 치더니 정몽주의 비석이 깨져버린 것이었습니다.
후손들은 정몽주가 조선의 영의정이라 새겨진 것에 대해 화가 났음을 깨닫고 고려 시대 때 받은 관직인 '고려 수문하시중 정몽주의 묘'라고 비석을 다시 세웠습니다.
그 후 정몽주의 비석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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