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뒤 고려왕조 때 수도인 개성에서 다른 곳으로 수도를 옮기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계룡산으로 정했으나 공사가 진행 중일 때 반대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중신이 계룡산으로 수도를 옮기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무릇 도읍이라 함은 나라의 가운데 있어야 하는데 계룡산은 너무 남쪽에 있고, 지세가 너무 좁고 토지가 푹 꺼졌으니 풍수지리상 쇠약과 패망을 불러옵니다."
중신들의 반대에 어쩔 수 없이 공사를 중지하고 한양으로 천도하기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무학대사에게 궁궐터 자리를 찾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무학대사는 지금의 왕십리 근처에서 지형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처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노인이 농사를 지으면서 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멍청하고 미련한 무학 같은 놈아. 어째서 바른 곳을 두고 굽은 곳으로 가냐?"
무학대사는 그 농부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여기서 북서쪽으로 십리만 더 가보라고 했습니다.
노인의 말대로 십리를 가자 명당자리를 발견했고, 그 자리가 지금의 경복궁 자리입니다.
명당을 찾은 무학대사는 그 노인에게 감사함을 표하러 다시 찾아갔으나 노인은 없고 어떤 절간이 있어 그 절간 안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절간 안에는 그 노인의 초상화가 걸려있다고 합니다.
그 노인의 정체는 신라 말기 풍수도참설의 대가였던 '도선국사'라는 스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노인을 만난 곳은 십리를 더 가라고 말해 왕십리(갈 왕(往) 열 십(十) 마을 리(里))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청량리
청량리는 '청량사'라는 절에서 이름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 절은 푸른 숲과 맑은 물이 흐르고 늘 청량한 바람이 불어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청량사는 고종 때 재건축했으며 일제강점기 시절 우국지사, 고승들이 즐겨 찾던 곳이라고 합니다.
말죽거리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유명한 말죽거리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일대를 부르는 지명입니다.
인조 2년(1624년) 이괄의 난으로 인조는 신하들과 함께 남도로 가는 길로 가는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모두 급하게 피난을 가서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 굶주림과 피곤에 지쳐있었습니다.
그러자 지금의 양재역에 이르러 피곤으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자 근처에 사는 선비들이 급히 팥죽을 쑤어 임금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그 뒤 그곳은 '임금이 말 위에서 죽을 마시다'라는 뜻으로 말죽거리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여의도
여의도 옆에는 '율도(지금이 밤섬)'이 있습니다.
밤섬은 서울 개발로 인해 한번 폭파된 뒤 작아졌지만, 퇴적물로 인해 다시 커졌습니다.
지금은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곳으로 철새들이 이곳에 쉬어간다고 합니다.
아무튼 옛날에는 밤섬이 희고 깨끗한 모래사장을 가지고 있어 경치가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반대로 여의도는 메마른 땅으로 농작물도 못 기를 만큼 황무지였습니다.
그래서 '너나 가져라'라는 말에서 '너의 섬'이라는 뜻의 여의도(너 여(汝), 어조사 의(矣), 섬 도(島))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로니에 공원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마로니에 공원은 1962년 일본인 우에노 교수가 마로니에 나무를 심어서 마로니에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마로니에는 전 세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가로수라고 합니다.
'일반상식 모음 > 사회, 문화 지식 한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흥인지문(동대문), 숭례문(남대문), 목멱산(남산), 이태원 설화 모음. (1) | 2023.09.09 |
---|---|
망우리 고개, 재동, 압구정, 피맛골, 도화동 지명의 유래 (1) | 2023.09.09 |
임진왜란당시 괴담 모음. (0) | 2023.09.09 |
정몽주 설화 모음. (0) | 2023.09.09 |
나라마다 금지하는 음식들. (0) | 2023.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