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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 고개, 재동, 압구정, 피맛골, 도화동 지명의 유래

달빛독서 2023. 9. 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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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 고개

태조 이성계는 어느덧 나이를 먹고 죽을 때가 다가오자 자신이 묻힐 명당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동구릉의 건원릉 터를 찾았고 만족하면서 환궁을 했습니다.

 

환궁 도충 한 고개 위에서 쉬게 됐는데 고개 위에서 오랜 근심을 잊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고개를 망우리(잊을 망(忘), 근심할 우(憂), 마을 리(里) 고개라고 불렀습니다.

 

 

재동

재동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동입니다.

 

재동은 조선시대 세조 때 만들어진 지명입니다.

 

이 지명은 '계유정난'으로 만들어졌는데 계유정난은 수양대군과 그 심복들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고, 단종을 보필하던 황보인 등의 중신들을 살해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당시 거리는 피비린내가 진동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무등을 태우고 남은 재를 모아 뿌렸고, 온 동네에 재를 뿌리자 '잿골'이라고 부르다가 오늘날 재동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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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압구정은 조선 세조때 한명회의 호인 '압구'를 따서 붙인 정자에서 유래됐습니다.

 

한명회는 조선 전기의 권신이자 외척이며 정치인입니다.

 

압구는 '친할 압(狎)자와 갈매기 구(鷗)'의 한자를 쓰는데 말 그대로 벼슬을 버리고 갈매기와 친하게 지낸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런 호와 다르게 한명회는 권력에 찌들어 살았습니다.

 

 

피맛골(피마길)

피맛골은 서울 종로구 종로 1가에서 종로 6가를 잇는 종로의 뒷골목이자 도로입니다.

 

 

조선시대 종로 거리는 육조 관청이 있어서 벼슬아치의 행차가 많았다고 합니다.

 

벼슬아치가 지나가면 일반 백성들은 엎드려서 예를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벼슬아치 행사가 너무 길어지면 사람들은 계속 땅에 엎드려야 하니 자신들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지경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벼슬아치의 행차를 피할 수 있게 종로 거리 뒤쪽에 뒷골목을 만들었습니다.

 

피마골은 '피할 피(避), 말 마(馬)'을 써서 말(행차)을 피해 가는 뜻을 가진 이름이 됐습니다.

 

 

도화동

도화동은 서울 마포구에 있는 동입니다.

 

도화동의 유래에는 슬픈 전설이 하나 전해 내려옵니다.

 

이곳에는 옛날에 노인과 그 노인의 딸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딸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마음씨가 몹시 곱고, 효심도 지극했다고 합니다.

 

이 소문이 옥황상제의 귀에 들어가자 옥황상제는 그 딸을 며느리 삼기 위해 신하를 보냈습니다.

 

노인은 자신의 딸이 옥황상제의 며느리가 된다는 소식에 무척 기뻤으나 딸과의 이별 때문에 몹시 슬프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옥황상제는 먹으면 천년을 살 수 있다는 천도복숭아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딸과 바꾼 복숭아를 차마 먹을 수 없었고, 복숭아는 이내 썩어 씨앗만 남았습니다.

 

노인은 그 씨앗을 땅에 정성스럽게 심었고, 싹이 자라 복숭아나무가 됐습니다.

 

시간이 흘러 노인도 죽었지만 그 일대는 복숭아나무의 숲이 되었고 이때부터 복숭아꽃 마을이란 뜻인 도화동 '복숭아 도(桃), 꽃 화(花), 마을 동(洞)'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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