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인지문(동대문)
흥인지문은 나라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기운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흥인지문은 단종이 수양대군에 의해 사약을 받을 때, 임오군란 때, 광재군 때 인조를 옹립하는 반정군이 한성으로 들어올 때 문이 기울었다고 합니다.
숭례문(남대문)
숭례문 현판은 세종의 형인 '양녕 대군'이 썻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현판이 임진왜란 당시 잠시 사라진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랄 청파역 다리 밑에 밤마다 이상한 빛이 난다는 소문이 돌았고 빛이 난다는 곳을 가보니 거기에는 잃어버린 숭례문 현판이 있었다고 합니다.
목멱산(남산)
옛날에는 남산을 목멱산이라고 불렀습니다.
목멱산에는 목멱신사가 있는데 여기에는 전설이 하나 내려져옵니다.
고려 때 함경 영흥이라는 곳에 한 할머니가 살았는데 어느 날 어린 이성계를 만납니다.
할머니는 이성계가 장차 왕이 될 상리라는것을 알고 나중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를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그 후 건장한 장수가 된 이성계는 새 왕조 건설을 두고 옛 할머니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습니다.
할머니는 이제 때가 됐으니 새 왕조를 세워야 한다며 대대손손 번영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할머니 어린 딸이 까불거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딸아이가 버릇이 없으니 따귀를 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성계는 고작 그런일로 따귀를 때릴 것까지는 없다며 거절했으나 계속 할머니는 따귀를 때리라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성계는 딸아이의 뺨을 살짝 때렸는데 그 아이는 픽 쓰러져 그대로 죽어버렸습니다.
갑자기 아이가 죽자 이성계는 당황하며 놀랐는데 할머니는 액땜을 한것이라며 담담히 딸아이의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이성계는 그 후 조선을 건국하고 목멱신사를 세워 할머니와 딸의 초상화를 모셔 놓고 산신의 제사와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이태원
서울 용산구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이태원은 슬픈 전설이 하나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태원은 옛날에 배나무가 많다고 해서 이태원 [배나무 리(梨), 클 태(泰), 집 원(院)]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태원 [다를 이(異), 아이 밸 태(胎), 집 원(院)]이라고 부르는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때는 임진왜란으로 왜군이 용산 등지에 있는 '운종사'라는 절을 점거하면서 주둔했다고 합니다.
운종사는 여승들만 사는 절입니다.
왜군은 거기에 주둔하면서 여승들을 겁탈했고 물러날 때는 절에 불을 지르고 갔다고 합니다.
왜군에게 겁탈당한 여승은 자살한 사람도 있었고, 왜군에게 살해당한 사람도 있었으며, 왜군의 아이를 갖게 된 아이도 있습니다.
나중에 운종사를 되찾은 조선은 왜군의 아이를 낳은 여승을 벌하지 않고 부군당 근처에 움막을 지어 모여 살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는 관아의 노비가 됐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임진왜란 때 항복한 왜군이 이태원에 모여 살여 이타인 [다를 이(異), 다를 타(他), 사람인(人)]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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