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과 함께 하는 지식한냥

서울지명 2

서울 지명의 유래 모음(말죽거리, 피맛골, 여의도, 낙산, 마로니에 공원)

말죽거리인조 때 이괄의 난으로 인해 인조는 신하들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급하게 피난을 가던 도중이 모두 굶주림과 피곤에 지쳐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때마침 그 근처에 사는 선비들이 팥죽을 쑤어 임금에게 바치고 말에게 죽을 먹이던 곳이라 하여 '말죽거리'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피맛골(피마길)서울 종로구 종로 1가에서 종로 6가를 잇는 종로의 뒷골이자 도로입니다. ​조선시대 종로 거리는 육조 관청이 있어 지위기 높은 벼슬아치의 행차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때마다 백성들은 땅에 엎드려 예를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에는 지나가는 벼슬아치가 너무 많다 보니 땅에 엎드리는 시간이 길어져 볼일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벼슬아치들의 행차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종로 거리 뒤편에 만..

서울 지명의 유래 모음(왕십리, 망우리고개, 청량리, 재동, 도화동)

왕십리태조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창건 후 수도를 옮기는 것을 추진했습니다. ​처음에는 계룡산으로 정하고 그곳을 새 수도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도읍지 이전 공사가 약 10개월 정도 진행 중일 때 반대하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조정의 중신들이 반대하였는데 그 이유는 '도읍이란 나라의 가운데에 있어야 하는데 계룡산은 너무 남쪽에 치우쳐 있고 지세가 너무 좁고 토지가 푹 꺼졌으니 풍수지리상 쇠약과 패망을 가져오는 자리'라고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신하들이 반대에 이성계는 공사를 중지하고 한양으로 천도하기를 결정하고 무학대사에게 궁궐터를 지을 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왕에게 부탁받은 무학대사는 지금의 왕십리 근처에서 지형을 살펴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근처에 농사를 짓고 있는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