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과 함께 하는 지식한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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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매바위), 탄천 설화 모음.

남한산성(매바위) 남한 산성에 한쪽에는 '매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습니다. 이 바위에는 한 가지 설화가 전해 내려옵니다. 남한산성은 삼국시절 백제 온조왕이 건설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조선 인조 때 이 산성을 새로 손봐서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고 합니다. 인조는 당시 경기도 광주 유수로 있던 이서에게 성을 쌓도록 명령했습니다. 이서는 다시 이회에게 남쪽지역을 맡겼고, 북쪽 지역은 벽암대사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서는 공사진행이 얼마나 됐는지 확인하러 시찰을 나갔습니다. 이회가 맡은 남쪽지역은 공사진행이 느린데 비해 북쪽 벽은 이미 완성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의회는 매일 술을 마시느라 공사가 늦어진다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화가 난 이서는 이회를 공사비 횡령죄로 처형합니다. 이회는 죽기..

흥인지문(동대문), 숭례문(남대문), 목멱산(남산), 이태원 설화 모음.

흥인지문(동대문) 흥인지문은 나라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기운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흥인지문은 단종이 수양대군에 의해 사약을 받을 때, 임오군란 때, 광재군 때 인조를 옹립하는 반정군이 한성으로 들어올 때 문이 기울었다고 합니다. 숭례문(남대문) 숭례문 현판은 세종의 형인 '양녕 대군'이 썻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 현판이 임진왜란 당시 잠시 사라진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랄 청파역 다리 밑에 밤마다 이상한 빛이 난다는 소문이 돌았고 빛이 난다는 곳을 가보니 거기에는 잃어버린 숭례문 현판이 있었다고 합니다. 목멱산(남산) 옛날에는 남산을 목멱산이라고 불렀습니다. 목멱산에는 목멱신사가 있는데 여기에는 전설이 하나 내려져옵니다. 고려 때 함경 영흥이라는 곳에 한 할머니가 살았는데 어느 날 어린 ..

망우리 고개, 재동, 압구정, 피맛골, 도화동 지명의 유래

망우리 고개 태조 이성계는 어느덧 나이를 먹고 죽을 때가 다가오자 자신이 묻힐 명당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동구릉의 건원릉 터를 찾았고 만족하면서 환궁을 했습니다. 환궁 도충 한 고개 위에서 쉬게 됐는데 고개 위에서 오랜 근심을 잊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고개를 망우리(잊을 망(忘), 근심할 우(憂), 마을 리(里) 고개라고 불렀습니다. 재동 재동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동입니다. 재동은 조선시대 세조 때 만들어진 지명입니다. 이 지명은 '계유정난'으로 만들어졌는데 계유정난은 수양대군과 그 심복들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고, 단종을 보필하던 황보인 등의 중신들을 살해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당시 거리는 피비린내가 진동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무등을 태우고 남은 재를 모아 뿌렸고, 온 동네에..

왕십리, 청량리, 말죽거리, 여의도, 마로니에 공원의 유래

왕십리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뒤 고려왕조 때 수도인 개성에서 다른 곳으로 수도를 옮기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계룡산으로 정했으나 공사가 진행 중일 때 반대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중신이 계룡산으로 수도를 옮기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무릇 도읍이라 함은 나라의 가운데 있어야 하는데 계룡산은 너무 남쪽에 있고, 지세가 너무 좁고 토지가 푹 꺼졌으니 풍수지리상 쇠약과 패망을 불러옵니다." 중신들의 반대에 어쩔 수 없이 공사를 중지하고 한양으로 천도하기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무학대사에게 궁궐터 자리를 찾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무학대사는 지금의 왕십리 근처에서 지형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처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노인이 농사를 지으면서 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멍청하..

임진왜란당시 괴담 모음.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조선에는 잠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고, 또 농사를 하지 못해 여기저기 굶어 죽는 사람 또한 많았습니다. 한 청년이 전쟁으로 인해 집이 폐허가 되자 할 수 없이 한양에 있는 친척 집에 신세를 지고자 한양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한양에 있는 친척집 또한 사정의 여의치 않아 청년은 할 수 없이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고향으로 내려 가던 중 날이 저물어 밤을 지낼 수 있는 집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저기 멀리서 아름다운 여인이 문 앞에 서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아름다운뿐만 아니라 옷차림과 머리가 단정하여 전쟁을 겪은 집안이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순간에 반한 청년은 그 여인에게 찾아가..

정몽주 설화 모음.

정몽주는 고려말 충신으로 학자이자 관리입니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조선건국에 반대하다 이방원에 의해 선죽교에서 살해당했습니다. 이방원이 정몽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하여가의 시를 읊었는데 정몽주는 단심가로 답해 고려에 대한 충성심을 잘 보여줬습니다. 정몽주의 태몽 정몽주의 아버지 정운관은 왕의 명령으로 중국에 갔습니다. 중국에서 가서 일을 하던 도중 어느 날 꿈속에서 부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인 또한 그날 꿈속에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이 신기한 일이 생기고 몇 달이 지나자 부인의 배가 점점 불러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바람이 난 줄 알고 화를 내며 임신한 며느리를 별체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며느리는 아기를 낳았고 남편 또한 중국에서 돌아왔습니다. 부..

나라마다 금지하는 음식들.

껌(싱가포르) 입이 심심할 때나 식사 후 입가심으로 씹는 껌은 싱가포르에서 금지된 음식입니다. 싱가포르에서는 껌을 뱉는 것은 물론 씹는 것도 불법입니다. 따라서 껌을 판매하는 것도 불법이기 때문에 사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다만, 2004년 이후 미국과 싱가포르 사이에 FTA협정으로 의료용이나 금연용 등의 특수 목적의 일부 껌은 의사를 통해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다고 합니다. 푸아그라(호주, 영국, 미국 캘리포니아, 이탈리아, 체코,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등 많은 국가에서 금지) 푸아그라(Foie gras)는 일본에서 뽑은 세계 3대 진미로 캐비어, 트러플, 푸아그라가 있습니다. 푸아그라는 프랑스 음식으로 거위의 살찐 간을 이용해 만든 요리입니다. 푸아그라는 살찐 간으로 만든 음식이라 지방이 많아 고..

월별 탄생석과 그 의미.

탄생석은 그 달을 상징하는 보석으로 자신이 태어난 달을 상징하는 탄생석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탄생석의 유래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12가지 보석 이야기가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탄생석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1912년 미국과 영국의 보석 조합회의에서 자신이 팔 수 있는 값비싼 보석으로 바꾸어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상술이... 그래서 해당 월을 상징하는 탄생석과 뜻은 나라마다 차이가 조금씩 있습니다. 1월의 탄생석 가넷(Garnet: 석류석) 가넷은 붉은색의 보석으로 붉은색뿐만 아니라 노란색, 주황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이 있습니다. 가넷은 '진실한 우정, 충성, 불변, 진리'등을 상징합니다. 2월의 탄생석 자수정(Amethyst) 자..

유명인들의 묘비명 모음집.

노스트라다무스(예언자) -후세 사람들이여, 그의 휴식을 방해하지 마시오. 마타하리(여자 스파이) -마르가레테 게르투르드 젤러.(그녀의 본명) 조지 버나드 쇼(노벨 문학상 수상자) -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아이스킬로스(고대 그리스 시인) -나는 말한다. 죽은 자가 산자를 살해한다고. 예니 마르크스(칼 마르크스의 아내) - 칼 마르크스의 절반이 여기에 잠들다. 뤼돌프 판 쾰런(네덜란드의 수학자) -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50288.. 중광(스님) -괜히 왔다 간다. 프리드리히 니체(철학자) -이제 나는 명령한다. 차라투스트라를 버리고 그대들 자신을 발견할 것을. 흥선 대원군(고종의 친아버지) -할 말이 너무 많아. 미켈란젤로(예술가)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

요리사 모자 '토그 브란슈'의 탄생 유래

요리사들이 흔히 쓰는 하얗고 길쭉한 모자인 '토그 브란슈'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요? 토그 브란슈는 요리사들이 흔히 쓰는 길고 하얀 모자입니다. 이 모자의 탄생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18세기 오스트리아 빈의 요리사인 앙투안 카렘이 손님이 쓰고 온 모자를 보고 만들었다는 설입니다. 그는 어느 날 요리를 먹으러 온 손님이 키 높은 하얀 모자를 쓰고 그것이 멋져 보여서 그와 같은 길고 하얀 모자를 썼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프랑스 요리를 체계화하고 '요리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어거스트 에스코피어'가 처음 썼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는 모자에 따라 요리사의 등급을 나눴습니다. 주방장은 가장 높은 모자를 쓰게 하고 나머지 다른 요리사는 실력에 따라 높이가 다른 모자를 쓰도록 했습니다. ..